12년 전, 세상이 2007-8년에 걸친 경제 위기의 후유증을 겪고 있던 그때, 켈리 최는 인생의 밑바닥에 있었다.
그녀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파리에서 그녀가 힘겨운 노력으로 만들어 간 삶은 끝없이 추락했다. 커뮤니케이션 사업이 망하면서 지게 된 10억의 빛과,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은 그녀를 세상에서 단절시켰고, 우울감과 식탐에 빠져들게 했다. 어느 날 센 강을 걸으며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
어쩌면 그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어린 시절의 선명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5-6살 즈음되었을 때, 시골에 살던 그녀는 하루 종일 여섯 명의 형제자매 중 3살짜리 막내 여동생을 돌보아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난한 생계에 몇 푼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근처에 농장에 과일을 따러 나갔다.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리는 두 소녀를 위해,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면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일꾼들에게 오후 간식으로 나누어 주는 빵조각이었다.
센 강을 내려다보면서, 켈리에게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그 빵을 드셔 보시지도 못했을 텐데, 한 입도 먹지 못하고 우리를 위해서 그 빵을 다 가져오셨구나."그리고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죽는다는 것은 곧 그녀의 어머니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한국전쟁 이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영양 부족과 적절한 의료 처방의 부족으로 이미 두 명의 자식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 어머니를.
켈리 최에게 그 순간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그 순간을 그녀는 거의 종교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상징적으로 과거의 저는 그 순간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삶을 선물로 얻었죠." 그녀는 새로운 삶을 그녀 자신,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어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켈리의 이 강렬한 이야기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도시가 봉쇄되기 이 전, 런던 웨스트엔드 중심에 있는 첫 초밥 데일리 로드샵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침과 점심 사이였다. 하얀 리넨 슈트와 핏에 잘 맞는 바지에 검은색 앵클 하이힐 부츠와 귀에서 흔들거리는 귀걸이를 매칭 한 켈리는 그녀 과거의 한 순간을 장식했던 파리의 패션 전문가처럼 보였다.
이 곳은 그녀의 첫 레스토랑이지만, 스시데일리는 이미 영국의 웨이트로즈와 세인즈베리를 비롯한 유럽 전역 슈퍼마켓에 키오스크를 가지고 있다. 10개 국가에 1000개 이상의 판매처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회사는 유럽 초밥 시장의 50%를 차지하며 평상시에는 하루에 100만 개 이상의 초밥을 팔고 있다. 켈리(51세)와 그녀의 남편 제롬 카스탕(51세)은 3억 6천만 파운드 매출을 일으키는 사업을 빚 또는 외부 투자자 없이 전부 소유하고 있다.
켈리가 스시데일리를 구상한 이유는 간단했다. 스시와 회는 그녀가 7년 동안 패션업계에서 종사하며 도쿄에서 지낸 20대 시절부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사람들의 입맛이 점점 글로벌화되면서, 켈리는 유럽 사람들의 초밥에 대한 기호도가 특별한 음식에서 일상의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신선하게 만들어진 초밥을 슈퍼마켓 안의 키오스크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그녀의 사업 아이디어는 그녀가 직접 판매장소를 매입하거나 빌리는 것보다 훨씬 적은 투자자본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놀랍지 않게도 그녀의 가장 큰 장애물은 슈퍼마켓 체인이 그들의 둥지 안에 그녀의 사업체가 함께 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슈퍼마켓 체인은 독립적인 사업체가 슈퍼 안의 좋은 자리를 선점해 그들의 사업에서 혜택을 얻고, 더욱이 날 생선 제품을 저장하고 판매하는 것을 통해 위생 상의 위험을 키우는 것을 꺼려했다. 그녀는 초밥에 대한 수요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을 주장하며 그들을 설득했다. 고객들은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상품군들을 통해서 초밥이라는 하나의 큰 음식 트렌드가 반영되기를 바란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수요는 필수적인 트레이닝을 거친 전문적인 스태프들을 통해서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접을 어필했다.
또한 그녀는 슈퍼마켓이 편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도, 매장 곳곳에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장에서 초밥을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초밥 키오스크는 기존의 사람을 통한 고객 접대 방식에 극적이고 재미있는 요소를 더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슈퍼마켓이 가장 선호하는 고객군, 즉 안목 있고 새로운 것에 열망하며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소비자들을 끌어당길 수도 있었다.
우선, 켈리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일관성 있고 달성 가능한 비즈니스 플랜으로 변화시켰다. 그녀는 비즈니스에 관련된 수 백 권의 책을 읽고, 슈퍼마켓의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 어떠한지 알고 그들의 반응을 파악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비자들을 관찰했다. 그녀는 그녀의 생각에 "파리에서 최고, 그리고 아마도 유럽에서 최고의 초밥 장인"인 쿠니오 야먀모토 셰프를 설득하여 그녀가 초밥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고 수백 개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그녀의 멘토로 삼았다.
야마모토 셰프는 대중적인 시장에 맞추어 수제 초밥을 대량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처음에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을 하였다. 모든 재료는 최고의 품질을 유지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야마모토상이 쌀, 김 그 외의 재료 모두 손수 가르쳤어요"라고 켈리는 말한다. 현실적이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측면 때문에 쌀은 일본에서 수입하지 않지만, 초밥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이상적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3가지의 아시안 품종을 섞어서 이탈리아에서 주문 재배하고 있다. "우리가 설령 차선의 쌀 품종을 사용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재료의 품질에 있어서 절대 타협을 보지 않았습니다.
켈리는 그녀의 어머니가 10년 전 유럽을 처음 방문하면서"최고급 프렌치 와인에 설탕을 넣은" 에피소드와 함께 이제는 어머니가 와인의 독톡하고 떫은맛을 즐기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그녀의 키오스크 매장은 "유럽인들의 입맛을 교육"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엄청난 양의 사업 개발과정에는 켈리의 철저한 절제력과 인내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그녀가 위기 속에서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시작해 홍보사업을 한 지난 과거 속에서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일했다고 한다. 이제는 그녀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와 더 큰 커뮤니티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새로운 직업관을 안겨 주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금연이나 다이어트하기, 공부하기와 같이 각자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지요. 이런 목표들에는 정말 좋은 의도가 담겨있지만, 작심삼일 하기 쉽고,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철학, 믿음 또는 근본적인 인생의 기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만약 오직 스스로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밑바닥까지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한다면, 더 큰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이러한 새로운 믿음을 바탕으로 그녀가"생각 파워"하고 부르는 "잠재의식을 계발"하였다. 매일 아침 그리고 취침 전 , 그녀는 그녀의 장기적인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집중한다. 몸무게 조절이나 마라톤 준비와 같은 단기적인 목표의 경우, 목표로 하는 날짜나 몸무게의 숫자를 핸드폰의 비밀번호로 사용한다고 한다."이렇나 방법들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 스스로와의 약속을 잊어 저리지 않게 됩니다."당신의 목표, 꿈이 하나의 신념이 되는 것이지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센 강에서 깨달음을 얻은 2년 후, 켈리는 슈퍼마켓 체인에 첫 제안을 했다. 10개월 후, 그녀의 첫 초밥 데일리 키오스크는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 리옹 지점에 문을 열었다. 그녀의 키오스크는 첫 주부터 예상 세일즈 실적을 훌쩍 뛰어넘으며 소위 "대박"을 쳤고, 하나의 브랜드로서 프랑스 전역 그리고 유럽에 확장할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그리고 켈리의 남편이자, 대기업의 중역이었던 제롬은 편안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그녀의 사업에 함께했다.
런던의 레스토랑을 포함하여 일부의 지점들은 본사인 "켈리 델리"에 의해 직접 운영되지만, 대부분의 켈리 델리 키오스크는 프랜차이즈로서 자영업자들과의 파트너십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켈리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100명의 자영업자들의 꿈을 이루어 주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는 그 목표를 굉장히 빨리 이루어냈고, 곧 1000명으로 목표를 수정했어요."라고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현재 회사의 직원들과 프랜차이즈 파트너 수를 모두 합해 5,500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켈리 델리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초밥 데일리의 큰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그녀의 가족들은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자식과 손주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편안하지만 여전히 본인의 평생을 함께한 습관인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계신다. 켈리는 어머니에게 매 달 돈을 드리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 돈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제가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모르시기 때문에 지금도 저를 위해서 그 돈을 모아 두고 계세요. 어쨌든 저는 한 번 크게 실패한 적이 있으니까요..."
켈리가 젊은 사업가들을 위 해거 한국어로 책을 출판했을 때야,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고 쓰는 것을 배운 적이 없기에 켈리의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한 방송 채널에서 저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켈리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딸이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방송에서 켈리는 자신의 책이 가장 궁핍한 상황에서 기적 같은 삶을 살아온 그녀의 어머니 덕분에 쓰일 수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저희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며 항상 미안해하셨죠. "이제 어머니는 자신이 사실은 자식들을 위해서 얼마나 멋진 일을 하셨는지 이해하셨을 거예요"라고 켈리는 말한다.
*매일 켈리 최 인스타에서 생각 파워 글을 블로그에 필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저의 글이 아니며 켈리 최의 글 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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